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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섬별 아카이브 구축 급하다

양진형 대표 | 기사입력 2024/03/15 [09:34]

[칼럼] 섬별 아카이브 구축 급하다

양진형 대표 | 입력 : 2024/03/15 [09:34]

노인 한명이 사라지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섬 하나가 사라지는 것은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아마도 나라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섬은 선사시대부터, 어떤 섬은 임진왜란 이후부터 사람이 살아왔다. 지금은 대부분의 섬이 전성기의 ‘십분의 일’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지만, 섬들은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유지해 오고 있는 작은 나라임이 틀림없다.

 

고령화로 섬들이 소멸 위기에 처한 현실에서, 살아계신 분들이 돌아가신다면 섬 문화도 통째로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더 늦기 전에 각 섬별 역사를 정리해야지 않을까 생각하던 차에 ‘낙월도(落月島)’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전남 영광군 칠산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 낙월도는 달이 지는 쪽에 있다고 해서 ‘진달이섬’으로도 불린다. 한때는 전장포와 더불어 국내 새우젓 생산량의 60%를 담당했던 이 섬은 전성기 에 인구가 1000여 명에 달했으나 현재는 170여 명으로 줄었다.

 

이 책은 수필집이라고 하지만 ‘섬 역사서’에 가깝다. 낙월도에 대한 통시적이고 다각적인 기록물을 남김으로써 사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다. 256쪽 분량으로 섬의 역사와 문화, 지리, 종교, 교육, 교통 등을 망라해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지금은 사라진 낙월도 새우잡이 어선 ‘중선’과 전해오는 상엿소리, 뱃노래 가락 등도 채보해 기록했다.

 

‘여서도지(麗瑞島誌)’라는 책도 눈여겨 볼만하다. 여서도지는 완도의 남쪽 끝에 있는 오지 섬 여서도의 지리와 인문환경 등을 담아 완도문화원이 발행한 책으로, 역사학을 전공한 유영인 씨가 썼다. 이 책은 발행 목적에서 “지금 살고 계신 노인들이 떠나면 섬의 문화와 언어, 민속이 영원히 사라질 것 같아 미리 대비해 재조명하려 한다”고 밝혔다.

 

이 책은 마을에서 내려오는 언어로 지명 하나하나를 매우 구체적이고 현장감 있게 설명하고 있으며, 패총의 역사는 물론 마을에서 신성하게 여긴 바위와 주민 생활상까지 폭넓게 다룬다.

 

특히 고향을 떠난 향우들의 동정도 다루고 있는데, 섬 주민들의 주요 출향지인 군산과 부산까지 찾아가 향우들을 인터뷰하고 유년 시절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수집해 게재하고 있어 흥미롭다.

 

지자체 중에서는 2026 여수 세계섬박람회를 준비 중인 전남 여수시의 섬 문화 아카이브 구축 노력이 돋보인다. 여수시의 경우 관할 행정동의 지리, 역사, 문화유산, 성씨·인물 등과 함께 거문도, 금오도, 연도 등 소속 유·무인도에 대한 콘텐츠를 ‘디지털 여수문화대전’으로 구축해 누구나 쉽게 접근하도록 했다. 하지만 개별 섬에 대한 자료 측면에서 볼 때 ‘낙월도’와 ‘여서도지’처럼 단행본으로 낼만큼 상세하지 않다는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각 섬의 전통문화는 앞으로 케이컬쳐(K-Culture)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 오래된 미래의 원형이다. 이 원형이 사라지기 전에 정부 주도의 지자체 공모사업 형식으로, 전국 450여 개의 유인도에 대한 섬별 아카이브 구축에 나서야 한다. 거문도뱃노래, 위도띠뱃놀이 등 이미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세상에 많이 알려진 것도 있지만 섬에는 아직 채집되거나 정리되지 않은 노동요와 설화, 민속놀이, 그리고 섬 음식 레시피가 수두룩하다. 잊혀 가는 섬 향토사를 재조명하고 기록할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 기사는 브릿지경제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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