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김용구 박사의-맛있는 인천 섬 이야기]⑱ 소청도·대청도 동백나무 군락지

글/사진 김용구 인천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 기사입력 2024/04/11 [08:35]

[김용구 박사의-맛있는 인천 섬 이야기]⑱ 소청도·대청도 동백나무 군락지

글/사진 김용구 인천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 입력 : 2024/04/11 [08:35]

소청도와 대청도는 인천시에서 약 180㎞ 정도 떨어져 있다. 인천보다 위도가 높은 지역에 있지만, 동백나무 군락지가 있다. 해마다 4월 중순 전후 동백꽃이 만발한다.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는 난대식물인 동백나무가 소청도, 대청도 등 북쪽 지역에서 자란 이유는 해류(바닷물)의 영향 때문이다.

 

실제로 대청도 1월 평균기온이 1.1℃(인천 –1.5℃)이고, 2월 평균기온은 1.2℃(인천 –1.0℃)로 인천보다 따뜻하다.

 

대청도 동백꽃/사진=김용구 박사


남쪽에서 북상하는 해류(난류)의 영향을 받아 영하의 기온이 오랜 시일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동백나무를 비롯한 남방계 식물이 자생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문화재청은 대청도 동백나무 자생지를 동백나무가 자연적으로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 지역으로서의 학술 가치를 인정해 1962년 천연기념물 제66호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대청도 동백나무 숲/사진=김용구 박사

 

대청도 동백나무 군락지에는 두 개의 표지석이 있다. 하나는 1933년 일제에 의해 지정된 표지석이고 다른 하나는 1966년 우리나라 문화재청이 지정한 표지석이다.

 

대청도 동백나무와 관련해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먼 옛날 동백나무 꽃이 아름답게 피는 남쪽지방 출신 청년이 대청도로 와서 이곳 출신 처녀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청년이 급히 고향에 다녀올 일이 생겨 떠나게 되자 아내는 남편한테서 말로만 들어온 아름다운 동백꽃의 씨를 가져와 심기를 당부했다.

 

그러나 곧 온다던 남편은 몇 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지친 아내는 결국 병들어 죽어버린다. 어느 날 남편이 돌아오게 된다. 아내의 무덤 앞에서 통곡하자 주머니 속의 동백 씨가 떨어져 나와 지금의 동백나무숲이 됐다고 한다.

 

대청도 사람들에게 동백나무는 특별한 나무이다.

 

대청도에 사는 손무남·이명산씨는 “마을에서 결혼하던 당시는 결혼식에 타고 갈 가마를 마을 사람들이 밤새워 만들었어요. 생화가 귀해 습자지를 이용해 조화를 만들고 여기에 장식으로 동백나무줄기와 동백꽃을 사용하기도 했어요. 동백꽃이 피는 봄에는 꽃다발로, 가을에는 동백나무줄기를 이용해서 신랑이 신부에게 주기도 했어요. 이처럼 결혼식에 동백나무와 꽃을 사용했지요. 여기 사람들은 동백꽃을 아주 귀하게 생각했어요”라고 입을 모은다.

 

4월 중순쯤 내동 길가나 모래울동 집 앞마다 동백나무 꽃들이 만발한다. 몇 년 전 대청도 동백꽃을 보러 갔는데 마침 대청도 천주교회 미사 때 제대에 사용하는 꽃이 동백꽃으로 장식해 사용하고 있었다.

 

대청도 아래 소청도가 있다.

 

대청도 아래 소청도 일원/사진=김용구 박사

 

소청도 예동마을 뒤편에 동백나무 자생군락지가 있다. 동백나무 수령은 200년 이상으로 추산된다. 현재 약 35주 정도 자라고 있다. 4월 말경 동백꽃이 만개한다.

 

(사진 위) 소청도 동백나무.  (사진 아래) 소청도 동백나무 군락지/사진=김용구 박사


조선왕조실록(정조 37권, 1793년)에 ‘소청도는 대청도 남쪽 뱃길로 30리쯤에 대청도와 마주하고 있다. 나무들은 대체로 떡갈나무가 많고 동백(冬栢)과 춘백(春栢)이 십 중 칠할 이었다”라고 기록돼 있다.

 

이처럼 약 220년 전 소청도에 동백나무가 70~80%를 차지하고 있다는 기록에서 보듯 과거 소청도에선 동백나무가 지금보다 훨씬 많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소청도에 사는 이은철 씨는 “어릴 때 동백나무에서 그네를 타고, 동백나무로 팽이도 만들어 친구들과 놀곤 했다”며 동백나무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한다.

 

소청도 예동마을 동백나무의 경우, 수령이 200년 이상 되고 크기도 우수한 자생군락지를 형성하고 있어 보존가치가 높다.

 

몇 년 전 소청도 예동마을 동백나무 자생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달라고 신청했는데 탈락되었다. 지금이라도 인천시 문화재로 지정되면 좋겠다.

 

소청도 동백나무 군락지에 김대건 신부상이 세워져 있다.

 

1950년 말 소청도, 대청도 천주교 신도들이 북한 순위도가 보이는 동백나무 군락지에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김대건 신부는 1846년 음력 4월 18일 마포에서 배를 타고 연평도, 순위도, 소청도, 대청도를 거쳐 백령도에 도착한다. 이어 음력 5월 12일 백령도에서 청나라 어부에게 편지와 조선 지도를 전달한 후 순위도에 돌아온다.

 

함께 간 교우들이 연평도에서 잡은 조기가 마르지 않아서 순위도에 며칠 더 머무르길 청했고, 2주일 더 체류하게 된다. 체류 중에 김대건 신부는 체포돼 해주를 거쳐 서울로 이송, 1846년 음력 9월 16일 새남터에서 처형된다.

 

소청도 동백나무를 문화재로 지정하고 종교 관광과 연계하면 좋을 것 같다.

 

* 이 기사는 경기신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경기도 인천 충청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제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