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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임회면서, 고산 윤선도 기리는 '당제' 열려

2월 5일, 백동·남선마을 등 4개마을 합동으로 개최

김준성 기자 | 기사입력 2023/01/31 [11:37]

진도 임회면서, 고산 윤선도 기리는 '당제' 열려

2월 5일, 백동·남선마을 등 4개마을 합동으로 개최

김준성 기자 | 입력 : 2023/01/31 [11:37]

1991년 고산 윤선도 선생 공적비 제막식/사진=굴포당제보존회


전남 진도군 임회면 굴포마을에서 ‘2023 굴포당제-고산 윤선도 선생 감사제’가 열린다.

 

정월 대보름날인 2월 5일, 굴포당제보존회가 주관하는 이번 굴포당제는 보통 마을에서 열리는 당제와 달리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마을의 평안을 바라는 일반적인 동제 의식에 덧붙여 남도 인문학의 대가인 고산 윤선도 선생의 보은에 대한 ‘감사제’의 의미를 담고 있다.

 

굴포마을 주민들뿐만 아니라 굴포 간척지를 중심에 두고 살아가고 있는 신동·백동·남선마을 주민들이 합동으로 당제를 지낸다.

 

4개 마을 주민들이 이처럼 ‘고산 윤선도 선생’에 대한 감사제를 지내는 이유에는 조선 갯벌 간척의 역사가 꿈틀거리고 있다.

 

조선 후기, 해남윤씨가에서는 바다 갯벌에 제방을 쌓아 농토를 만드는 해언전(海堰田) 개발에 집중했다. 1640년대 후반경 고산 선생은 진도 굴포로 들어와 높이 3미터, 길이 380미터의 방축을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토가 부족했던 농민들은 간척지를 불하받아 ‘고품질 갯벌쌀’을 생산하며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었다. 굴포 간척으로 농민들이 새롭게 유입되면서 ‘신동’마을이 형성되기도 했다.

 

해남윤씨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에는 ‘굴포전답곡기(窟浦田畓穀記)’와 같은 추수기(秋收記) 내용이 포함돼 있다. 굴포에서 농사를 짓던 강씨 등이 소작료가 비싸다며 탄원한 ‘소작쟁의’가 기록돼 있기도 하다.

 

고산 선생이 10살 때인 1596년 굴포에서 소작료를 받아간 기록으로 보면, 굴포만 간척사업은 그의 조부인 윤의중(1524~1590) 때부터 시작해 1640년 후반경 고산 선생이 완성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굴포당제보존회 관계자는 "고산 선생은 1640년대 후반 둑을 완성하고 1674년에 세상을 떠났으나, 굴포마을을 비롯한 4개 마을 주민들은 적어도 350여 년 동안 감사제를 열며 선생의 은덕을 기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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