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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해경 아카이브/사라지는 항·포구](34)신안 흑산면 영산도항
하루 1회 흑산도간 도선 운항..해양 생활문화의 보고

한때 홍어잡이로 나주 영산포에 홍어 공급, 지금은 자연산 홍합·미역으로 명성 유지
서해해경, 섬 주민 생명보호 보루 역할..섬주민 위급시 해경 호출

양진형 기자 | 기사입력 2022/06/07 [16:29]

[서해해경 아카이브/사라지는 항·포구](34)신안 흑산면 영산도항
하루 1회 흑산도간 도선 운항..해양 생활문화의 보고

한때 홍어잡이로 나주 영산포에 홍어 공급, 지금은 자연산 홍합·미역으로 명성 유지
서해해경, 섬 주민 생명보호 보루 역할..섬주민 위급시 해경 호출

양진형 기자 | 입력 : 2022/06/07 [16:29]

현재 14가구가 거주하고 있는 흑산도 영산마을 전경/서해해경청


영산도(永山島)는 전남 신안군 흑산면의 부속 섬으로 목포에서 100km가량 거리의 서해에 위치한다. 홍도 행 쾌속선을 타고 가다 흑산도에 이르기 전, 왼편에 보이는 섬이 영산도다.

 

서해의 망망대해에 자리하고 거주인구도 많지 않은 만큼 이 섬으로 직항하는 여객선은 없다. 흑산도를 경유한 다음 하루 한 차례 운항하는 도선을 이용해 입도한다.

 

영산도행 도선은 10여년 전부터 운항됐으며, 그때나 지금이나 1일 1회 운항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다른 섬에 비해 도선이 늦게 마련된 것은 마을 주민 대다수가 자가 소유의 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령화 및 섬 인구의 감소에 따라 개인 배들이 사라져 도선이 필요하게 됐다는 것이다.

 

“1970년대 이전에는 목포에서 흑산도까지 통통배로 8시간 이상이 소요됐습니다. 흑산도 예리항에서 배를 내려 ‘예리뒷대목’까지 걸어간 다음, 그곳에서 다시 영산도행 배를 타야 했습니다.”

 

영산도의 북서쪽 해안에 자리잡은 영산항/서해해경청


최연동 할아버지(85)는 "50~60년대에는 뭍에 나가는 사람들이 미리 가족들에게 언제 들어온다는 말과 함께 흑산도에 도착해서는 검불 등으로 봉화 불을 피워 가족과 마을 사람들에게 알렸다"고 회고했다.

 

현재 도선장을 맡고 있는 최성광 씨(57)는 "이렇게 연락을 해도 물때가 맞아야 영산도에 들어올 수 있었다"며 "배가 못 들어오면 친척집에서 자거나 흑산도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지냈다"고 설명했다.

 

영산도는 2022년 현재, 14가구에 17명의 주민과 함께 발전소, 치안센터 및 보건소의 관계자만이 거주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섬이 갖는 수산자원과 해양문화적 가치는 여느 섬에 뒤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영산도는 호남의 특색 있는 음식인 홍어의 주 산지였고, 이 음식의 육지 전파에 기여한 영산포(전남 나주지 소재 지역)와 많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제주도 못지않은 해녀로 유명한 곳이 이 섬이다.

 

일부에서는 나주의 영산포란 지명과 홍어가 영산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두 곳 모두 조선시대 무렵 나주목(군)의 소속이었고, 바다의 뱃길이 영산강을 따라 멀리 나주에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산’이란 지명은 나주의 경우 영산포(榮山浦)로 쓰인 것에서 나타나듯 두 곳의 한자가 상이하고 특히 영산도와 흑산도의 나이 든 세대들의 경우 영산도를 ‘영생’이라 부른다는 점에서 명칭의 연관성은 낮아 보인다.

 

“우리 어렸을 때 ‘영생에서 홍어 다리(홍어 생식기)가 건너간다’, ‘영생에서 시집왔다’ 등과 같이 영산도를 ‘영생’이라고 불렀습니다.”

 

영산항의 숭어 떼/서해해경청


흑산도에서 이곳으로 시집왔다는 김은자 씨(여·77)는 지금도 나이 든 분들은 영산도를 ‘영생’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인 황모씨(여·76)도 ‘영생가시나(처녀), 영생머시마(총각)’라 했다며 이를 뒷받침했다. (한편, ‘영산’이란 지명과 관련해 최근 연구는 고려 공민왕 12년에 영산도의 본도인 흑산도가 출륙해 (영산강의) 남포강변에 '영산현'을 설치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지명과 달리 홍어와 관련한 두 지역의 연관성은 상당하게 보인다.

 

“영산도 사람인 최 씨가 예전에 영산포로 건너가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의 손자가 영산도에 다녀가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나이든 분들에게서 들었습니다.”

 

이 곳 토박이 구재철 씨(77)를 비롯한 섬 주민들은 이 최 씨를 연결고리로 해 영산도의 홍어를 비롯한 상어, 농어, 돔 등의 생선이 영산포로 실려가 그곳에서 곡식, 옷, 생필품 등과 물물교환 됐다고 설명했다.

 

구 씨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어른들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그 시기가 1800년대 말엽으로 추정되며 그 당시 홍어 잡이를 한 지역은 영산도 밖에 없었고, 흑산도 사람들이 영산도의 홍어 잡이가 끝날 무렵인 1960년대까지 영산도로 건너와 이곳 홍어 잡이 배에서 일했다고 기억했다. 따라서 나주 영산포 홍어의 역사는 영산도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홍어의 주 산지였으나 지금은 홍합과 미역이 특산품이다/서해해경청


영산도의 특산품은 한때 홍어였지만 현재는 홍합으로 바뀌었다. 이곳의 홍합은 자연산으로 크기가 타 지역에 비해 크며, 해녀들을 비롯해 마을 사람들이 캔다.

 

“‘잠질(잠수, 물질)’을 해서 전복, 해삼, 성게 등을 잡지만 배를 타고 나가 인근 해안 바위에서 홍합을 따기도 합니다.”

 

현재도 해녀로 활동하고 있다는 김 씨와 2~3년 전까지 해녀를 했다는 황 씨는 "예전에 그냥 옷을 입고 잠질을 할 때는 무거운 납을 몸에 찰 필요가 없었는데, 고무옷(잠수복)을 입은 뒤부터는 물에 떠서 보통 6-7kg의 납을 차고 잠수해야 한다" 말했다.

 

“썰물 때에 보통 6m 깊이까지 들어가 잠질을 하고 밀물 때에 나옵니다. 하루에 4~5시간 정도 잠질해서 평균 2.5~3kg의 해산물을 따고, 많게는 10kg까지 잡기도 해요.”

 

황 씨와 김 씨는 "'잠질’은 물이 흐리거나 물때가 높으면 못하기에 한 달에 7~8일 정도 하게 된다"며 "전복의 경우 특이하게 똑같은 장소에서 같은 크기의 것들이 잡히기에 해녀들은 모두 특정 장소를 다 알고 있다"고 소개했다.

 

영산도의 경우도 신안의 여느 섬들과 비슷하게 특이한 상·장례 풍속이 1990년대 후반 무렵까지 존속했다고 한다. 비금, 도초도 등에서 ‘밤다리’로 불리는 이 풍속을 이곳에서는 ‘철회’ 또는 ‘철야’라 불렀으며, 초상이 나면 집집마다 쌀 반 되 가량을 거둬 이것으로 쌀죽을 쒀서 밤새 놀며 먹었다고 한다.

 

폐교된 초등학교/서해해경청


한편,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이곳 섬주민의 생명과 의료의 보루 역할을 하고 있다. 영산도보건진료소 장모 소장은 "바다에 위치하기에 병원 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무조건 해양경찰을 부르고 있다"며 "실제로 지난해 10월 무렵에는 혈압이 높은 응급환자가 발생해 해경이 신속히 육지로 이송했다"고 소개했다.

  

서해해경은 또한 지난 3일 여객선이 끊긴 저녁시간, 영산도 인근 흑산면 다물도에서 맹장염으로 추정되는 응급환자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 흑산파출소 소속 구조정을 긴급 출동시켜 이 환자를 육지로 이송해 생명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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