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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의 산과 바다 , 북한 송악산까지 한눈에...석모도 상주산

황금들녘 송가평야와 다도해,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인생 뷰'

양진형 기자 | 기사입력 2021/10/18 [13:05]

강화의 산과 바다 , 북한 송악산까지 한눈에...석모도 상주산

황금들녘 송가평야와 다도해,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인생 뷰'

양진형 기자 | 입력 : 2021/10/18 [13:05]

석모도 상주산 정상


'궁즉통'이라던가. 이번 섬 기행이 그랬다. 해안과 갯벌이 아름다운 강화 볼음도를 트레킹 하기 위해 친구들과 아침 6시 50분, 강남 한티역에서 만나 승용차로 이동한다. 아침 날씨는 14도로 바람이 꽤 쌀쌀하다.

 

친구의 수고로, 1시간 20분가량 걸려 도착한 강화 서도면 선수선착장 입구에서 한 아저씨가 차를 제지한다. 풍랑으로 8시 40분에 출발 예정인 아침 배는 뜨지 않는다고 한다. 순간,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일행의 표정이 굳어진다. 다음 배는 12시 50분에 있다. 설령, 이 배로 출발한다 해도 나오는 마지막 배가 오후 2시 40분이니 사실상 볼음도 트레킹은 불가하다.

 

난감하다. 마침, 강화도를 잘 아는 친구 두 사람이 아이디어를 맞댄다. 선수선착장에서 가까우면서도 동서남북 사방의 조망이 아름다운 석모도 상주산과 해안 둘레길을 걷자는데 모두 동의한다.

 

궁즉통, 풍랑으로 배가 결항한 ‘볼음도’ 대신 ‘석모도 상주산 둘레길’

 

강화도 서편 바다 위에 길게 모로 누워있는 석모도는 산과 바다, 갯마을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섬이다. 예전에는 석모도에 들어가려면, 강화 외포리 선착장에서 10분가량 배를 타야 했다. 하지만 2017년 6월, 강화와 석모도를 잇는 석모대교(1.4km)가 놓이면서 이제는 쉽게 차로 가는 섬이 되었다.

 

상주산 정상에서 바라본 강화도 변립산. 가운데 멀리 북한 개성의 송악산이 보인다


석모도는 행정구역상 강화군 삼산면에 속하는데 해명산, 상봉산, 상주산 등 3개 산이 있어 이렇게 불리게 됐다. 해명산과 상봉산에 올라 바라보는 주변의 풍광과 서해의 낙조를 바라보는 것도 아름답지만 요즘 같은 가을엔 상주산에 올라 황금빛으로 물든 드넓은 송가평야와 사통팔방의 조망을 만끽하는 것도 석모도 여행의 또 다른 묘미다.

 

갯가에서 낚시하고 있는 모습


석모대교 지나 우회전하여 석모나루터에서 상주산으로 가는 둘레길은 매우 운치 있어 보인다. 바다와 갈대밭 사이로 난 제방길은 낭만 가득한 길로, ‘강화나들길 제19코스-석모도 상주 해안길’이다. 듬성듬성 갯가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망둥어(운절이) 등을 낚는 강태공들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고향 바닷가에서 대나무 낚싯대로 망둥어를 잡던 어릴적 기억이 떠오른다. 이맘때가 토실하게 살이 오른 망둥어를 낚기에 적기다. 

 

암릉미가 뛰어난 상주산


해발 264m의 상주산은 다가갈수록 암릉미가 뛰어나다. 그렇지만 지난해 건너편 교동도 화개산에 올라 바라보던 모습에는 미치지 못하다. 바다 건너에 오뚝 솟아있음인지 화개산에서 본 상주산 풍광은 마치 설악산 남설악에 올라 만경대를 바라보는 듯 위풍당당함을 주었다. 오늘 보니, 서쪽으로부터 점점 몸을 일으킨 상주산은 북쪽 정상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놓고 곧바로 교동도 앞바다로 자맥질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

 

황금빛 평야와 갈대숲, 그리고 사통팔방의 조망에서 느끼는 ‘가을 낭만’

 

새넘이재 주차장


자료를 검색해 보니, 강화나들길19코스는 석모나루터에서 시작해 상주산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원점 회귀하는 코스로 약 14km에 이른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승용차로 상주산 새넘이재(해발 96m)까지 접근하기로 한다. 그곳에서 상주산 정상까지 올라간 후에 원점 회귀하여 해안 둘레길을 좌에서 우로 도는 것이다. 총 트레킹 거리는 8km로 초보자도 쉽게 걸을 수 있는 코스다.

 

상리마을을 통과하여, 새넘이재에 도착하니 차량 4대가 먼저 주차해 있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왕복 2.8km로 느긋하게 걸어도 1시간 30분이면 족하다.

 

등산로에 핀 산국. 말려 차로 끓이면 향기가 그만이라고 한다


등산로에는 절정기를 맞은 산국이 여기저기 노랗게 피어 환하게 웃고 있다. 어쩌면 오늘 우리 일행도 저 산국의 시기를 지나고 있을지 모르겠다. 20대 초반에 지방에서 상경하여, 가정을 이룬 후 각자의 분야에서 고군분투하며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어느새 오늘에 이르고 말았다.

 

아무리 절개가 곧은 산국이라 할지라도 무서리를 당해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반평생 곰삭은 마음 편안한 친구들과 함께 자연을 탐방하면서 산국처럼 잘 익어가고 있음이 행복 중의 행복일 터이다.

 

군데군데 이어지는 밧줄 구간


군데군데 밧줄을 잡고 고도를 높여 나갈수록 사방의 풍경들은 그만큼 고개를 낮춘다. 북쪽으로는 교동도와 교동대교 너머 북한의 송악산이, 서쪽 발치 아래로는 널따란 황금빛 송가평야와 저 멀리 주문도 아차도 볼음도가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남서쪽으로 석모대교와 마니산이, 동쪽으로는 별립산 고려산 등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강화도의 산과 바다는 물론 북한지역의 산하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멋진 조망처다.

 

건너편 석모도와 송가도 사이에 형성된 송가평야(석모평야)


예전 상주산이 있는 이곳 섬은 송가도(松家島)라 불렸다. 고려시대에는 강화도 천도 후, 이곳 소나무로 궁궐을 지었다고 한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던 석모도와 송가도는 조선 숙종 때에 동서로 진행된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하나가 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바다는 200만여 평에 달하는 광활한 송가평야로 변모했다. 옛 바다로 토질이 비옥한 데다 해풍을 맞아서인지 이제 막 수확을 앞둔 송가평야의 들녘은 온통 노란 산국 빛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쌀은 밥맛이 좋기로 유명한 '강화 섬 쌀'로 통한다고 한다.

 

갯가엔 연초록 갯질경, 길가에서 맛 보는 단사(丹砂)처럼 붉은 ‘꾸지뽕’

 

상주산 해안으로 이어지는 둘레길(강화둘레길 19구간)


정상에서 조망의 호사를 흠씬 누린 후 하산하여, 이제 해변 둘레길을 돌기로 한다. 주차장에서 해안 쪽으로 가는 임도를 따라 조금 내려서니, ‘강화나들길19코스’ 이정표가 보인다. 바닷가 해안에는 조간대와 갯벌지대가 펼쳐지고 거센 바람에 응등한 기세를 한 파도 소리가 요란하다.

 

상주산 해안에서 바라본 교동도 화개산


길은 곧 해안을 벗어나 산자락으로 올라선다, 둘레길 표지판이 디테일하게 잘 되어 있어 헤맬 일이 없어 보인다. 마침 포대 자루를 들고 뭘 줍는 부부가 있어, 물어보니 도토리를 줍는다고 한다. 원하는 만큼의 양을 줍지 못해 탐탁지 않은 모습이었는데 막상 산길로 깊숙이 들어서자 온통 도토리 천지다.

 

해안가의 갯질경


다시 좌측으로 해변이 드러난 곳에 앉아 점심을 먹는다. 처음 보는 청초한 식물이 척박한 돌 틈 사이에서 자라고 있다. 알고 보니 갯질경이다. 두해살이 풀로 바닷가에 무리를 지어 사는데 겨울이면 꽃대에서 노랗게 꽃을 피운다고 한다.

 

바다 한가운데 여기저기에는 그물을 매단 흰 부표가 떠 있고, 거센 파고를 헤치며 간간이 고깃배들이 지나간다. 바람이 갈수록 거세어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한 후 일어선다. 둘레길은 산길에서 다시 시멘트 포장길로 들어선다. 그늘이 없고 딱딱한 길이지만 계절이 가을이어서인지 지루하지는 않다.

 

새넘이재로 가는 삼거리


아침에 상주산을 오르기 위해 지났던 새넘이재 삼거리에 접근할 무렵, 앞서 가던 일행이 길가에 서성이며 뭔가를 먹고 있다. 다가서자, 주인장의 허락을 얻은 친구가 열매 한 알을 따서 입에 넣어준다. 밤톨만 한 크기의 빨간 산딸기 같은 열매로 달짝지근하다.

 

꾸지뽕/자료=구글


두보의 시 ‘북정’(北征)에 “산 열매들이 숱하게 열려서 선약인 듯 단사(丹砂)처럼 붉다”는 구절이 있다. 진분홍의 단사는 신선이 되는 선약(仙藥) 중의 으뜸이라 한다는데 이 단사의 색깔처럼 붉게 익은 열매, 바로 꾸지뽕이었다. 길가의 꾸지뽕 나뭇가지는 그물로 감싸 놓았다. 주인장에 의하면 오가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따가는 바람에 보호막을 쳤다는 것이다. 꾸지뽕이 고혈압과 간에 좋다고 소문나면서 요즘 야산에서는 꾸지뽕 남아나질 않는다고 한다.

 

이 꾸지뽕에 얽힌 얘기가 전한다. 정약용은 꾸지뽕을 가리켜 “형상(荊桑)도 양잠에 쓰니 심을 만하다”고 했다. 이 나무의 잎으로도 누에를 키울 수 있으니, ‘굳이뽕’이라 부르다가 소리 나는 대로 꾸지뽕이 되었다고 한다. 이름이야 어쨌든, 친구들과 단사처럼 붉게 익은 귀하다는 꾸지뽕까지 맛보는 호사까지 누렸으니 오늘만은 모두가 신선이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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